몸의 얼굴, 몸의 시간
아침 여섯시 이십분. 눈을 뜬다. 혹시 알람을 못 들을까봐 시계까지 차고 잤다. 제일 먼저 핸드폰을 확인한다. 혹시 내가 하루를 꼬박 자버린 건 아닌지, 놓쳐서는 안될 연락이 와있던 건 아닌지. 보통 연락은 없거나 아주 드물다. 시계를 벗는다. 씻으러 화장실로 간다. 거울을 본다. 눈, 코, 입, 지저분한 눈썹, 팔자주름, 이마. 머리칼, 이마와 머리칼이 만나는 지점을 본다. 치약을 짜 칫솔에 올린다. 눈을 감고 양치를 한다. 변기 위로 털썩 앉는다. 물로 입을 헹군다. 치약 거품을 뱉는다. 손에 물을 받아 입 주변을 닦는다. 물 나오는 방향을 샤워기로 바꾼다. 물을 튼다. 차가운 물. 온도를 높인다. 여전히 차가운 물. 차가운 물. 차가운 차가운 미지근한 물. 따뜻한 물. 약간 줄이고 머리를 적신다. 젖은 머리를 뚝뚝 흘리며 샴푸를 펌핑한다. 젖은 머리 위에 발라 거품을 낸다. 다시 물을 틀어 머리를 헹군다. 물 나오는 방향을 세면대로 바꾼다. 손에 물을 받아 얼굴에 묻힌다. 폼클렌징을 짜내 손바닥 위에 바른다. 양 손바닥을 비벼 거품을 낸다. 얼굴에 묻힌다. 다시 손에 물을 받아 얼굴에 묻은 거품을 닦아낸다. 앞머리 한번 쓸어올린다. 수건으로 젖은 머리와 얼굴을 닦는다. 손에 스킨을 덜어 얼굴에 바른다. 로션도 바른다. 화장실에서 나온다.
거울 앞에 앉아 드라이기로 말린다. 언젠가부터 뜨거운 바람을 틀어도 차가운 바람이 나온다. 차가운 바람으로 말린다. 더 추워지기 전에 드라이기를 바꿔야지. 언제 더 추워질까. 언제 찬바람을 견디지 못하는 때가 올까. 머리가 다 마르면 옷을 입는다. 아침은 쌀쌀하다. 그러나 낮은 덥다. 셔츠 한 장 입는다. 잠옷 바지를 벗고 긴 바지를 입는다. 양말은 신지 않고 가방에 챙기기만 한다. 쪼리를 신을 거니까. 버스 시간에 맞춰 나간다. 버스를 탄다. 신도림역 정류장에서 내려 역 안으로 들어가 일호선으로 갈아탄다. 버스 안에서는 잔다. 음악도 듣지 않고 그냥 잔다.
종각에서 내린다. 역사 내에서 파는 김밥 두 줄 산다. 검정 비닐봉지를 대충 가방 안에 욱여넣는다. 3-1 출구로 나간다. 종로 타워 앞에서 따릉이를 탄다. 안국역까지 직진한다. 안국역 앞에서 따릉이를 반납한다. 송현공원을 가로질러 미술관으로 향한다. 운이 좋으면 한시간 사십분 운이 나쁘면 두시간까지 걸린다. 출근을 찍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삼층 탈의실로 들어간다. 안녕하세요. 소리내어 인사한다. 너무 덥죠 그늘이 없어요. 햇빛을 피할 길이 없네 진짜. 라고 말한다. 말하면서 유니폼으로 갈아입는다.
간단한 조회를 마치고 각 전시장으로 배치된다. 열 시가 되면 듬성듬성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눈을 마주치면 눈인사 한다. 소리내어 인사하면 나 역시 소리내어 인사한다. 누군가 질문하면 대답한다. 가끔씩 다가가 제지한다. 사람이 적을 땐 의자에 앉는다. 사람이 많을 땐 일어선다. 앉으나 서나 내 시야에는 차이가 없다. 나는 아주 잘 보이거나 혹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보는 정도에 따라 다르다. 나는 가만히 서 있는다. 아니다 사실 좀 돌아다닌다. 졸기도 한다. 미술 작품을 보러 사람들이 온다. 게이트에 티켓 찍는 소리가 들린다. 나 역시 본다. 사람들을. 구경과 의심의 경계에서 본다. 유니폼 명찰에는 이름 대신 ‘고객지원’ 네 글자가 쓰여있다. 그게 내 이름이다. 나는 저기요 혹은 선생님으로 불린다. 가끔 거기, 가끔 야. 다른 직원들 또한 ‘고객지원’ 이라는 이름을 가진다. 나는 누구도 아니다.
이름은 없고 단지 두 다리로 서 있는 이 몸이 내가 된다. 고객지원들 끼리는 서로를 이름으로 부른다. 뒤에는 선생님을 붙인다. 나는 고객지원들에게 김보섭 선생님이라 부른다. 나도 그들을 그들 각자의 개별적인 이름 뒤에 선생님을 붙여 부른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잘 부르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을 본다. 만지면 안된다고 이야기 한다. 통화는 바깥에서 해달라고. 출구로 들어오시면 안된다고 입술을 움직여 말을 한다. 사람이 없을 때는 앉는다. 사람이 있을 때는 서 있는다. 팔십 킬로그램의 무게가 곧 내가 된다. 어깨가 뻐근하고 다리가 아프다. 몸이 느껴진다. 몸이 있다는 사실이 낯설다. 이 몸이 나라는 것이 내가 이 몸이라는 것이. 이름에 붙은 영혼 같은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오직 이 몸만이 나라는 사실이. 이 사실이 내 몸이라는 것이 낯설다 보면 점심시간이다. 아침에 사 온 김밥을 먹는다. 적당히 부른 배로 탈의실에 들어가 낮잠을 잔다. 그렇게 가만히 시간을 보내다 보면 퇴근 시간이다. 식사 시간을 포함해 아홉 시간, 출근 시간을 포함하면 열 한 시간, 집에 가는 시간도 합치면 열 세 시간.
집에 돌아온다.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본다. 그새 자란 수염. 피곤한 눈. 유분 낀 얼굴. 그렇게나 오랜 시간이었는데 열 세 시간 밖에 안됐다. 이렇게 무거운 몸을 열 세 시간동안 끌고 다녔는데 여전히 잘만 움직인다. 이렇게나 오래 산 것 같은데
여전히 이것 밖에 안 살았다. 이 문장을 쓰는 동안 또 얼마 간의 시간이 갔다. 그래서 한 문장 더 쓴다.
여전히 이것 밖에 안 살았다.
여전히 이것 밖에 안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