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누

자르기

영화가 어렵다. 정확히는 영화를 보는 게. 말 그대로 난이도가 있는 행동이다. 영화보기보다 더 어려운 건 극장에서 영화보기다. 극장 좌석에 칭칭 묶여서 말도 못하고 들어오는 이야기와 감정을 그대로 다 받아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 나는 감정 전이도 잘 되는 편이라 영화 한번 잘못보면 몇날 며칠 마음이 힘들다. 영화는 보려면 적잖은 각오가 필요하다. 집에서 볼 때는 그나마 괜찮다. 핸드폰 보면 되고 트위터 하면서 보면 되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한번 마음으로 들어온 영화는 나를 헤집는다. 대체 너희가 누군데. 너희는 엔딩 크레딧 올라가면 끝이잖아. 그러면서 내 마음 속에는 계속 살아가잖아. 그 상태 그대로 계속 슬픈 그대로 살아가잖아. 나는 그런 너희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물론 이 이야기는 앞으로 할 말과는 별 상관 없는 이야기다.

나는 말이 많다. 말이 얼마나 많냐하면 무언가 준비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준비하고 있는 과정, 아이디어 등을 다 말한다. 말이 많은 것까지는 별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진짜 문제는 내가 할 말이 없어도 말을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말하기’라는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내 기분이나 감정 혹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 더 나아가 우스개 농담이라도 전달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냥 말을 하기 위해 말을 한다. 별 것도 아닌 말을 하고 있다보면 말을 하는 일 자체가 송구스럽게 느껴진다. 아무나 붙잡고 아무도 안 궁금한 자기 이야기 늘어놓는 늙은 취객처럼 말을 한다. 어떤 문제는 그렇게 효용도 없이 말하다 보면 해소되기도 한다. 문제는 그럼 말을 많이 했다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문제의 총량은 그대로다. 지금도 그렇다. 말을 많이 한다는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말을 안하면 되는 거다. 근데 구태여 말이 많다는 말을 또 하고 있다. 말이 말을 낳는다. 말이 말을 낳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영화도 잘 안 본다. 비단 영화 뿐인가. 책도 잘 안 읽는다. 드라마도 안 본다. 내가 보는 거라곤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는 유튜브 영상이나 제목도 기억 못하는 앨범을 통째로 틀어놓기다. 보지도 않은 영화의 리뷰 영상도 본다. 그 영화를 볼 생각은 하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할 말이 내 얘기 밖에 없다. 내 작업 이야기, 내 작업관, 내 생각, 내 감정, 내 기분, 내 하루 같은 이야기 뿐이다. 종일 내 과잉 정보를 특정 누군가에게 혹은 불특정한 다수에게 주입 시키는 꼴이다. 대체 나와 극장이 다른 점이 무언지 모르겠다. 극장은 영화가 바뀌기라도 하지. 나는 태어난 이래로 지금까지 쭉 나였다. 피할 길도 없이 그냥 나. 그러니까 말을 좀 그만할 필요갸 있다. 그러려면 극장에 가야한다. 극장 좌석에 나를 앉히고 몸을 칭칭 묶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트위터도 못한 채로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정을 통째로 삼켜야 할 필요가 있다. 가장 좋은 건 내가 본 영화를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럼 할 말이 없어지니까. 나는 심지어 안 본 영화에 대해서도 어느정도는 이야기 할 수 있다. 대화에 낄 수 있다. 그러나 나만 본 영화에 대해서는 이야기 할 수 없다. 이야기 할 때 막중한 책임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말한 그대로 영화를 인식할 확률이 높다. 그럼 말하기가 꺼려진다. 말하기라는 행위가 무거워진다. 그럼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얼마 전에는 사토 타케루 감독의 영화 ‘일요일 다음날’을 봤다. 주변에서 나만 봤다. 그래서 뭐라 말을 못하고 있다. 그럼 그런 김에 말을 안하면 되는데 또 말을 한다. 다른 주제를 가져와서 말하고 저번에 했던 말 또하고 또 설파하고 말을 하다 못해 낭독회까지 연다.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커피 약속을 잡는다. 이제는 낯선 사람을 만날 때 무슨 말을 하지? 고민도 안한다. 어차피 무슨 말이라도 하게 되어있다. 영화관에 가야 한다. 영화관에 가서 나를 묶어야 한다. 그럼 또 영화관에 가서 묶이는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하겠지? 영화를 보는 행위에 대해, 나에게 영화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겠지?

아 진짜 존나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