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래도 아니라고 할래
루의 실패를 봤다. 라고 말하면 정말로 루가 실패하는 광경을 목격한 것만 같다. 그러면 꼭 루가 내 아는 사람 같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이미 루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같다. 루를 보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슬기를 보면서도, 블래키를, 솜차이를, 네모를, 최정원을 보면서도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다. 누구는 루와 슬기를 합친 것만 같고 누구는 블래키와 솜차이를 누구는 네모와 최정원을 합친 것만 같다. 루와 친구들은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그리고 내가 염려하고 걱정하는 그리고 번거로워 하는 그리고 좋아하고 아끼는 소중한 친구들일지도 모른다.
나는 루의 실패를 읽으며 루가 다다른 실패를 생각한다. 그는 어떤 실패에 다다른 걸까. 어떤 것을 실패라 부르는 걸까. 끝내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해 데이팅 앱을 통해 남자를 만나 잠을 잔 거? 코비드 양성이 떴음에도 혼자 격리하기 싫어서 친구들과 놀다가 모두에게 옮긴 거? 정신병 약을 제때 안 먹고 늘 빼먹은 거? 남자친구인 정원의 말에 용기를 얻어 다시금 진을 하리라 맘 먹었으면서 막상 친구들 앞에서는 어줍잖은 이유를 대면서 제대로 설득하지도 못한 거? 그래서 진은 시작도 못해보고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 버렸고 단톡방 마저 폭파된거? 그래서 결국 혼자 남아버린 거? 그 와중에도 네모에게 상처를 줘버린 거? 그런 것들이 루가 다다른 실패일까? 그걸 정말 실패라고 불러도 될까? 아니 꼭 그렇게 불러야만 할까?
물론 루가 하는 모든 행동들이 루의 마음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그의 삶이 더욱 어려워지는 결과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가 했던 모든 충동적 선택들을 실패라 부르고 싶지 않다. 잘했다는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단지 그냥 그건 선택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슬기가 생계를 해결하지 못해 본가로 내려가는 것도 실패라 부르고 싶지 않다. 블래키에게 가지 말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비아냥거리며 화낸 것도 실패라 부르고 싶지 않다. 마지막 진심을 끝내 말해주지 못하고 베를린으로 떠난 블래키의 마지막도 실패라 말하고 싶지 않다. 마지막까지 루의 곁에 남았으나 그럼으로 인해 자신이 루를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는 사실만 깨닫게 된 네모도 실패라 정의하고 싶지 않다. 그것들은 그냥 선택이고 깨달음에 불과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 각자가 그것들을 실패라 말한다 하더라도 나는 끝내 그걸 부정하고 아니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루에게서 내 친구를 보기 때문에 슬기에게서, 블래키에게서, 네모에게서, 솜차이에게서, 최정원에게서 내 친구를 보기 때문에. 그들의 선택을 실패라 부르면 꼭 내 친구들의 선택을 실패라고 부르는 것만 같다. 꼭 나의 선택을 실패라 부르는 것만 같다. 단지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조금 더 복잡하게 만들었을 뿐인데. 단지 그냥 좀 머리가 지끈거릴 뿐인데. 그냥 좀
좆됐다
는 생각이 들 뿐인데. 실패라 부르면 돌이킬 수 없는 결론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냥 그런 선택을 하였고 그것들까지 그들 자신이라 여기고 싶은 마음이다. 그냥 그게 루다. 그게 슬기다. 그게 블래키다.
그게 너다.
그리고 나다.
나는 ‘봐봐’ 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건 보통 상대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 하는 말이다. 지금 나는 너의 행동을 이렇게 이해했는데 이게 맞는지 아니라면 내가 너를 어떻게 이해하면 되는지 알려달라는 말을 하기 전에 붙인다. 이해하면 미워할 수 없다.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그건 내게 아직 너무 어려운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해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이해는 매번 실패한다.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계속 이해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내 친구 루야. 우리는 실패하지 않았다. 다시 시도하면 된다. 슬기가 같이 살던 집을 떠나 본가에 내려 갔다고 해도, 블래키가 베를린으로 가버렸다고 해도, 솜차이가 우리의 곁을 떠나버렸다고 해도. 정원이 끝내 너의 손을 잡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는 실패하지 않았다. 단지 그냥 그런 선택을 한 것 뿐이다. 그냥 그런 선택이다. 그냥 그런거야 루야. 응? 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