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누

주저 앉는 시 쓰기

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최근 나에게 왜 그렇게 시를 쓰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몇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시를 쓸 것인가는 생각해 봤으나 왜 그렇게 쓰려고 하는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이번 기회에 해보기로 했다. 최근에는 더 밍숭맹숭하고 더 뭉툭하고 어디에도 도달하지 않고 평평한 시를 쓰려한다. 어디 도착하지 않고 주저앉아 여생을 보내는 시를 쓰고 싶다. 애초에 목적지가 없어서 도달에 성공하지도 실패하지도 않는 시. 그냥 거기서 끝나버리는 시. 시가 더 아무것도 아니었으면 좋겠다. 시로 할 수 있는 게 더 없었으면 좋겠다. 시가 아무것도 아니어야 비로소 시를 썼을 때 시를 썼다는 기분만이 들 것 같다. 시의 성취가 오직 시를 썼다는 것에만 있는 시. 내가 시를 쓴 것만으로 뭔가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가 아닌 것은 시가 아닌 것을 해서 얻어내면 된다. 시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시 뿐이다. 그건 잘 쓴 시도, 역사에 남을 시도 아니다. 단지 그냥 시다. 시면 된다. 그렇게 쓰는 시가 별로여도 상관 없다. 시를 쓸수록 더욱 퇴보한다고 해도 괜찮다. 더 좋은 방향,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시를 끌고가고 싶지 않다. 물론 그것을 부러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냥 시를 쓴다. 끝이다.

왜 그런 시를 쓰고 싶은지 생각해 본다. 사실 별 이유 없는 것 같다. 우선 이전에 쓰던 방식들이 너무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효율적으로 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건 정확한 이유는 아니다. 시를 더 날카롭게 벼려내고 더 나은 방향으로 쓰려고 할 수록 나은 방향이라는 게 정해지고 그 방향에 모자라거나 부합하지 않은 시들이 생겨난다. 더 날카로워야 하는 시가 생겨난다. 그것들은 아쉬운 시다. 나는 생겨난 시들이 아쉽거나 모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에게 시 외의 다른 역할을 부여하고 싶지 않다. 그 역할에는 가려는 목적지에 부합함, 어느 정도 가까움, 어느 정도 멀리 있음 같은 것들도 포함이다. 운동을 하고 싶다면 운동을 한다. 연애를 하고 싶다면 연애를 한다. 외롭고 싶다면 외로워한다. 시는 다만 시일 뿐이다. 이것은 시의 한계도, 무엇도 아니다. 그냥 시다. 정말 그냥 시. 시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에 멋진 대답을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말해서 시에게 어떤 대단한 무언가라는 역할을 주고 싶지 않다. 시는 그냥 시다. 주로 운문 형식으로 이루어진 언어 예술의 한 갈래이다. 그냥 그런 것이다. 잘 쓴 시, 못 쓴 시도 없이 그냥 쓴 시. 그렇게 치열한 고민 없이 쓰여진 시가 결과적으로 너무 별로고 김누누 시 완전 망가졌다. 퇴보했다 한다해도 그런 시를 쓰고 싶다. 날카롭게 벼려내지 않고 어떤 한 지점을 향해 달려가지 않고 그냥 그만하고 싶은 곳에 멈춰서서 거기서 살아가는 시를 쓰고 싶다. 거기에 집을 짓고 살아가고 싶다. 다만 시가 여기에 있다.

어떻게 끝내야 할까? 할 말은 다 했다. 이후에 떠오르는 말은 그 다음에 하겠다.

주저 앉는 시 쓰기 — 김누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