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앉는 시쓰기 2
월요일에는 낭독회를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냥 멋있어 보일 것 같은 말만 죽 늘어 놓았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 개뻥이었다. 미안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을 앉혀놓고 있어보인다고 생각되는 말이나 지껄이고 말았다. 그러니까 시가 가려는 지점까지만 시를 보내고 거기에 집을 지어주니 마느니 하는 것들이 전부 다 그냥 아무 의미 없는 말에 지나지 않았다. 시가 가고 싶은 곳까지만 보내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집을 지어주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냥 시를 쓰다가 더이상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면서 말을 뱉었다. 이 사실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다. 그냥 잘 모르고 쓰는 거면서 시를 엄청난 사랑과 관대함으로 대하는 것처럼 말해버렸다. 말을 뱉어버려서 말에 묶여버리고 내 시는 그 말 속에 갇히고 말았다. 시에게도 미안하다. 네가 거기까지 간 게 아니고 내가 여기에 있어보라고 한 걸텐데. 괜히 애꿎은 시들만 가다가 멈춰버린 게 되어버렸다. 누가 왜 이렇게 써요? 라고 물으면 그냥 그렇게 쓰고 싶었어요가 최선의 대답이면서. 돌이켜 생각해 봐도 그 날 내가 했던 말은 다 개뻥같고 시가 어디에 수록 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만이 진짜였던 것 같다. 너무 창피하다. 신나서 낭독회를 기획한게 내 시 이야기를 하겠다고 들뜬 게 너무 바보처럼 느껴진다. 그냥 쓰는 건데 그냥 정말 한번 써보는 것 뿐인데.
그러니까 내게는 대단한 시론 같은 것이 없다. 그냥 어떤 상황, 어떤 장면, 어떤 사람, 어떤 생각, 어떤 연출 등을 해보고 싶으면 그냥 해보는 거다. 그래서 잘 나오면 좋고 안 나오면 마는 거다. 그걸 시에 대한 어떤 숭고한 태도처럼 시가 그냥 그 자체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니 어쩌니. 바보 같은 소리였다. 나는 그냥 그때 쓰고 싶은 걸 쓰는 것이다. 시를 쓰면서도 나는 어디로 가는 중인지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가다가 그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만 가는 것에 불과하다. 시가 그만 간 것이 아니다. 내가 멈춘 것이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더 나아가면 뭐가 나올지 모르겠어서. 모르겠는 상태로 쓰고 모르겠는 상태로 그만 쓴다. 다 내가 결정한 건데 그래놓고 시가 가려는 지점, 목적지가 아닌 어쩌고 같은 말을 내뱉으면 그게 꼭 시를 위하는 것처럼 시를 사랑하는 것처럼 되는 것 마냥 굴어댔다. 얼마나 대단한 시를 쓰겠다고. 얼마나 대단하면 전혀 대단치 않은 것처럼 꾸며내는 것까지 포함해 버리려 했는지.
모르겠다.
청탁이 끊긴지는 어느새 3년이 훌쩍 넘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외부에서 나를 찾아주는 것으로 생겨나는 시인으로서의 커리어는 그냥 끝났다 여기고 있다. 이건 아쉬운 일이지만 그렇게까지 슬픈 일은 아니다. 왜냐면 이미 충분히 슬퍼했기 때문이다. 읽힐 만한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고 잘 읽히는 시가 내 시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데 읽힐 만한 시가 뭔지도 모르겠고 그런걸 어떻게 흉내내려고 해도 못하겠다. 나는 그냥 내가 쓴 것 같은 시만 나온다. 내 시집은 판매량이 좋았던 적이 없었고 판매량이 좋았던 적이 없어서 여가생활을 다정씨의 도움을 받아 개인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작업이 있으면 그냥 해버릴 수 있었다. 홈페이지도 만들고 소품 시집을 통해 형식 실험을 하는 것도 다 그런 거다. 어떤 숭고한, 기존에 없던, 시가 가지 않은 길을 가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런 시를 쓰고 싶었던 거다. 그럴 수 있으니까. 박수도 조롱도 없으니까. 그럴 수 있어서 그렇게 했고 사실 더 파고들면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해서 그런 것 뿐이다. 산책하다가 마는 시. 아무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 시. 갑자기 시 속 화자가 독자에게 말을 거는 시. 그냥 그걸 쓰고 싶었다. 몰라요. 그냥 그땐 그랬나봐요. 그냥 시집에 상묵이와 한수라는 사람이 나오니까 도희라는 이름도 생각이 난 거고. 영재는 10대 남성을 생각했고 상묵과 한수는 20대 남성을 생각했으니까 그 외에도 40대 남성도 나오니까 20대 여성도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을 것 같고. 지금은 잘 기억이 안나고. 그냥 아무도 안 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양의 안식처를 썼던 것뿐이다. 그냥 그게 다다. 패터슨도 그냥 좀 질투가 나고 옹심이 난 것도 있다. 패터슨을 보면서 시인은 어디까지 해야 할까? 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말로 설명해봤자 말에 묶이기만 하는데 뭘 그렇게 어떤 문장으로, 어떤 태도로 말을 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나는 그냥 시를 쓴다. 그때 쓰고 싶은 대로. 시라고 쓰는 거다. 이렇게 해도 시일까? 저렇게 해도 시일까? 몸으로 확인해보는 것뿐이다. 가다가 어디로 갈지 모르겠으면 그냥 멈추고 새로 다시 쓴다. 여기에는 어떤 숭고함도 사랑도 없다. 없는 것 같다. 잘 모르겠다. 이것도 결국 시에 대한 말에 불과하다. 내 시는 또 다시 이 말 속에 갇히고 말았다. 그냥 누가 좀 내게 알려달라.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 건지. 무엇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